라오스는 조용하고 느린 나라입니다. 그 느림은 음식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어, 한 끼 식사도 성급하지 않고, 입 안보다 마음에 먼저 다가오는 맛이 대부분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라오스에서 반드시 맛봐야 할 대표 음식 세 가지를 통해, 그들의 삶의 방식과 식문화 속 철학을 함께 느껴보는 여정을 안내합니다.
생의 결을 나누는 음식 – 라프(Larb)
라프는 라오스를 대표하는 음식이자, 가장 자주,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나오는 음식입니다. '라프(Larb)'는 고기나 생선, 버섯을 잘게 다져 라임즙, 고추, 민트, 바질, 볶은 쌀가루 등을 섞어 만드는 요리입니다. 이름은 ‘복(福)’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어 경사스러운 날의 필수 요리로 여겨집니다. 현지에서는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 손님을 대접할 때, 결혼식, 졸업식 등 무언가를 축하하거나 나누고 싶은 순간에 라프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라프를 먹는다는 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과 오늘이라는 시간을 나누는 의식에 가깝습니다. 라프의 맛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북부에서는 다진 생고기로 만들어 생고기 특유의 감칠맛이 강조되고, 남부로 내려가면 익힌 고기와 달콤한 향신료를 더해 더 부드럽고 향긋한 맛이 납니다. 어느 곳이든 쌀밥이 아닌 찹쌀밥(카오 니아오)과 함께 손으로 집어 먹는 것이 기본입니다. 나는 루앙프라방의 어느 저녁, 강가의 작은 로컬 식당에서 라프를 처음 먹었습니다. 노을빛이 깔린 테이블 위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손수 담아낸 라프는 한입 베어무는 순간, 그 자리의 공기까지 함께 씹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맛은 단순히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했습니다. 삶의 리듬이 입 안에 스며드는 느낌, 그게 라프입니다.
숲을 담은 한 그릇 – 깽놈마이(Gaeng Nor Mai)
라오스 음식은 대체로 땅에서 나는 재료, 자연과 가까운 조리법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중에서도 ‘깽놈마이’는 진짜 숲의 맛이라 불릴 만큼, 현지의 자연과 계절,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담긴 음식입니다. ‘깽놈마이(Gaeng Nor Mai)’는 직역하면 ‘죽순 수프’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죽순 국물 요리라고 보기엔 그 깊이가 남다릅니다. 죽순을 베이스로 다양한 야생 채소, 버섯, 허브, 고추, 민물새우 등을 함께 넣고 된장처럼 발효한 파댁(Pa Daek)으로 깊은 맛을 냅니다. 깽놈마이는 시골 장터나 가정식 식당에서 주로 볼 수 있고, 대부분 주문이 들어간 후 재료를 직접 썰고 삶습니다. 요리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라오스 사람들은 그것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해 ‘식사’라고 생각하죠. 나는 팍세의 어느 로컬 장터 한쪽에서 한 아주머니가 플라스틱 대야 위에 재료를 하나씩 꺼내며 깽놈마이를 끓이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서 허브 향이 퍼지고, 그곳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둘 풀리는 걸 보며 이 음식은 맛보다 ‘속도’에 의미를 두는 음식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깽놈마이를 먹으면 라오스의 삶이 왜 그렇게 느리고, 조용한지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조리된 맛이 아니라, 기다린 맛이 입에 남는 음식 – 그게 깽놈마이입니다.
가장 라오스다운 건 잔 속에 있다 – 맥주라오(Beer Lao)
라오스를 대표하는 음료, 아니 문화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맥주, 그게 바로 ‘맥주라오(Beer Lao)’입니다. 이 맥주는 현지인부터 외국인까지 모두 사랑하는 국민 음료로, 식사와 함께, 노을 진 강변에서, 혼자 책을 읽는 시간에도 자연스럽게 함께합니다. 맥주라오는 현지 재료인 쌀과 유럽식 홉을 섞어 만든 독특한 풍미가 특징이며, 다른 동남아 맥주보다 목 넘김이 부드럽고, 쓴맛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그래서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도 부담 없이 마시기 좋죠. 특히 루앙프라방이나 방비엥 같은 여행자 밀집 지역에서는 해 질 무렵이면 어디서든 맥주라오 병이 반짝입니다. 소박한 강변 바, 숙소의 공용 테라스, 그리고 가끔은 혼자 앉은 여행자의 무릎 위에도. 내가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독일인 여행자는 “여기선 맥주라오가 알코올이 아니라, 풍경 자체예요.”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혼자 마셔도 외롭지 않은 맥주, 마시며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은 시간. 그런 감정을 주는 술은 맥주라오밖에 없을 겁니다. 맥주라오는 여행을 느긋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냥 앉아서 잔을 들고, 바라보고, 멍하니 있는 것. 그 자체가 라오스라는 나라의 여행 스타일과 닮아 있습니다.
라오스의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입 안이 아닌 마음을 채우는 한 끼, 그 속엔 사람, 속도, 풍경, 계절, 공동체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라오스를 여행한다면 가장 조용한 식당, 가장 평범한 식탁에서 가장 깊은 감정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