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안에 이렇게 다양한 풍경과 문화를 품고 있는 곳이 또 있을까요? 말레이시아는 하나의 국기 아래 있지만, 그 동서부는 때로 다른 나라처럼 느껴질 만큼 문화·민족·여행 스타일이 전혀 다릅니다. 사라왁, 사바, 말라카. 이 세 지역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말레이시아라는 퍼즐의 서로 다른 조각입니다. 이번에는 이 세 지역을 통해 동과 서의 뚜렷한 문화적 차이를 천천히 들여다보려 합니다.
정글 속 다문화 유토피아 – 사라왁(Sarawak)
말레이시아 동부, 보르네오 섬의 사라왁(Sarawak)은 여행자에게 낯설지만 특별한 감정을 남깁니다. 쿠칭(Kuching)이라는 이름부터가 이 지역의 부드러운 매력을 보여주죠. 말레이어로 '고양이'를 뜻하는 쿠칭은 실제로 고양이 동상이 도시 곳곳에 놓여 있어 여행자를 미소 짓게 만듭니다. 사라왁은 말레이, 중국계, 이반족(Iban), 비다유족(Bidayuh) 등 수십 개의 민족이 하나의 공동체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보기 드문 지역입니다. 특히 이반족의 전통 가옥인 롱하우스(Longhouse)는 지금도 일부 마을에서 실제 생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부는 관광객에게 공개되어 로컬 민속문화 체험의 중심이 됩니다.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들이 ‘말레이시아인이면서도 사라왁인’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가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음식에서도 드러납니다. 펠락(Pelak), 우마이(Umai) 같은 사라왁 전통 요리는 서부 말레이시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맛입니다. 이곳은 관광객보다 현지인의 삶에 더 깊이 다가가는 방식의 여행이 어울립니다. 자연 또한 특별합니다. 바코 국립공원(Bako National Park)에서는 들개처럼 자유로운 원숭이와 만나고, 강가를 따라 떠나는 야경 크루즈는 별빛 아래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줍니다.
야생성과 유연함의 공존 – 사바(Sabah)
사바(Sabah)는 사라왁보다 더 생생하고 날것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곳입니다. 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는 바닷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멀리 보이는 키나발루 산(Mt. Kinabalu)이 늘 수평선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사바는 이슬람 문화권이지만, 원주민 문화와 중국계 문화가 결합된 독특한 융합지대로, 같은 거리 안에 모스크와 도교 사원이 나란히 존재하며, 이슬람 율법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종교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현지인들의 생활 방식도 느긋합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흥정을 하며 웃는 사람들, 노점에서 같이 밥을 먹자고 손짓하는 노인들. 어떤 여행자들은 “사바는 말레이시아 안의 따로 노는 나라 같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사바의 음식은 고기 요리보다 해산물 중심입니다. 특히 수산시장에서 직접 고른 생선을 즉석에서 구워 먹는 문화는 코타키나발루 여행의 백미입니다. 밤에는 수트라 하버에서 보는 석양이 유명한데, 진한 주황빛이 바다를 덮을 때마다 여행자들은 말없이 사진기 셔터만 누릅니다. 사바의 진짜 매력은 사람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여행자는 그 틈에 앉아, 누구도 자신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지만 모두가 함께 숨 쉬고 있다는 따뜻한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도시 – 말라카(Melaka)
말레이시아 서부, 말레이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말라카(Melaka)는 말레이시아의 역사적 심장입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식민 지배를 차례로 거친 만큼, 도심 곳곳이 역사의 흔적과 문화의 충돌로 가득합니다. 조지타운이 아트와 음식으로 유명하다면, 말라카는 색감과 건축으로 기억되는 도시입니다. 유럽풍의 붉은 교회, 중화풍 샵하우스, 이슬람 사원이 한 골목 안에 어울려 있는 풍경은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특히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 야시장은 말라카 여행의 핵심입니다. 현지인들도 주말이면 일부러 쿠알라룸푸르에서 차를 몰고 이곳을 찾고, 사테칠링(Satay Celup), 논야 요리, 코코넛 아이스크림 같은 말라카 스타일의 길거리 음식은 국내외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습니다. 말라카는 이슬람, 중국, 인도, 유럽 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공간입니다. 그 복잡한 다름 속에서도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유지해 온 조화의 모습은 서부 말레이시아의 가장 강한 정체성이자 매력입니다. 걷다 보면 벽에 적힌 언어도, 사람들의 얼굴도, 가게의 간판도 전혀 통일되지 않은 듯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공존이 무엇인지’를 아주 평범한 하루 속에서 보여줍니다.
동쪽의 사라왁과 사바는 대자연과 토착 문화가 어우러진 생명력의 땅이고, 서쪽의 말라카는 역사와 문명이 겹겹이 쌓인 시간의 도시입니다. 두 얼굴은 서로 다르지만, 그 안에 흐르는 공통점은 ‘함께 살아가는 기술’입니다. 말레이시아를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단 하나의 도시가 아닌 서로 다른 세 곳을 함께 걸어봐야 합니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여행자가 아니라, 그 다양성 안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