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 발을 딛는 순간 느껴지는 독특한 공기. 현대적 도시 풍경 속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이슬람 문화의 결은, 여행자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종교라는 틀에 갇힌 이해가 아니라, 공존과 존중의 문화로서의 이슬람을 바라보며 말레이시아를 여행한다면, 그 나라의 진짜 모습을 비로소 만날 수 있습니다.
예배당 그 이상의 아름다움 – 모스크의 문화적 상징성
말레이시아의 모스크는 그 자체로 종교 시설을 넘어서는 예술적 상징입니다. 쿠알라룸푸르의 국립 모스크(Masjid Negara)는 마치 부채를 펼쳐놓은 듯한 독특한 지붕을 가진 구조로, 현대 건축과 이슬람 예술이 공존하는 대표적인 건물입니다. 이곳은 신자뿐 아니라 외국인 방문자에게도 개방되어 있어, 정해진 시간에 예절을 지키면 누구나 내부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전역에는 수많은 모스크가 있지만, 지역마다 분위기와 건축 양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예를 들어, 푸트라자야에 위치한 분홍 모스크(Masjid Putra)는 장밋빛 돔과 호숫가의 반영이 어우러져 여행자들에게 인생샷 명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말라카의 캄풍 클링 모스크(Kampung Kling Mosque)는 이슬람과 중국, 힌두교 건축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구조로, 말레이시아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로 손꼽힙니다. 여행자로서 모스크를 방문할 땐 반드시 알아야 할 예절이 있습니다. 긴 옷을 착용하고, 여성은 머리를 가리는 스카프를 착용해야 하며, 신발은 반드시 벗고 입장해야 합니다. 입장 전에 무료로 로브를 대여해 주는 곳도 많아 큰 부담은 없지만, 경건한 분위기를 존중하는 태도는 필수입니다. 모스크는 단지 종교의 공간이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는 삶의 중심이며, 문화적 자긍심입니다. 그 공간에서 조용히 앉아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믿고 사는 삶의 리듬에 마음이 동화되기도 합니다.
세대를 잇는 신앙 – 교육과 일상 속의 이슬람
말레이시아는 인구의 약 60%가 무슬림이며,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를 넘어 교육과 공동체 생활 속 깊이 뿌리내린 문화입니다. 학교에서는 아침 조회 후 간단한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공립 초등학교의 경우 일정 시간이 종교 교육(Moral/Agama Class)으로 편성되어 있어,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코란을 접하고, 예절을 배웁니다. 대도시의 고등교육기관 중에는 이슬람 국제대학(International Islamic University Malaysia)처럼 종교 기반으로 운영되는 대학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슬람 교육은 신자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비무슬림에게도 공존의 문화를 이해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슬람식 예절은 일상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식사 전에 "비스밀라(하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먼저 하고, 오른손으로만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또한, 여성이 남성과 악수를 하지 않는 경우, 이는 예의 없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이유로 상대를 존중하는 행동이라는 점도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면, 도시 어디서든 아잔(기도 부름)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에 익숙해지면, 마치 하루를 여는 종소리처럼 느껴지죠. 쇼핑몰이나 공항에도 작은 기도실(Surau)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이는 이슬람이 일상 그 자체로 존재하는 국가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여행자 입장에서 이러한 문화는 불편함이 아닌 배려의 기회가 됩니다. 조용한 찻집에서 기도 시간을 기다리는 가족을 보고, 무더운 날에도 히잡을 단정히 두른 여성을 보며,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시선이 여행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문화적 배려 – 금기와 존중의 경계
말레이시아를 여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의도치 않게 실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슬람 문화에는 타문화권 여행자가 모르고 넘기기 쉬운 소소하지만 중요한 금기사항들이 존재하죠. 먼저, 술에 대한 인식입니다. 말레이시아는 합법적으로 주류 판매가 이루어지지만, 무슬림에게는 종교적으로 금지된 행위입니다. 그래서 대형마트에서도 ‘비무슬림 전용 주류코너’가 따로 분리되어 있고, 식당에서도 술 판매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슬림 친구나 가이드와 여행할 경우, 술은 삼가거나 공개 음주는 피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또한, 모스크 앞이나 공공장소에서 애정 표현(포옹, 키스 등)은 매우 부적절하게 여겨집니다. 서양권에선 자연스러운 스킨십이라 하더라도, 말레이시아에선 사적인 감정 표현은 사적인 공간에서 하는 것이 기본 매너로 통합니다. 여행자들이 종종 간과하는 부분은 손짓과 몸짓의 의미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 발바닥을 보이는 자세, 신발을 문 앞에 어지럽게 놓는 행동, 왼손으로 물건을 주는 행위 등은 무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실수에 관대하다는 것입니다. 단, 그것이 무지에 의한 실수임을 인정하고, 다음에는 더 배려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말이죠. 나 역시 한 카페에서 실수로 왼손으로 돈을 건넸을 때, 직원이 웃으며 “It’s okay, you didn’t know”라고 말해줘 마음이 놓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슬람 문화권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말레이시아는 좋은 시작점입니다. 적당한 유연함과 체계적인 종교 시스템, 그리고 외국인을 위한 열린 태도가 이 나라를 다문화 속 균형의 본보기로 만들어줍니다.
말레이시아는 단일민족 국가가 아닙니다. 그만큼 다양성과 충돌, 타협과 수용의 역사를 겪어왔고, 그 중심에는 늘 이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슬람은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그러나 깊이 그들의 문화를 지켜온 태도로 여행자를 감동시키죠. 모스크의 정적, 기도 시간의 평온함, 그리고 일상 속의 절제된 품격. 이슬람은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삶을 단단하게 이어주는 리듬이자, 우리가 존중해야 할 문화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