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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일까? (번아웃, 이직, 이별 직후 등)

by l8m8l 2025.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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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어딘가 멀리 떠나고 싶다.”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시기가 있어요. 딱히 어디가 가고 싶은 건 아니었고, 뭘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지금 있는 이 자리가 너무 답답했어요. 출근길 지하철 안, 회사 복도, 집 소파에 앉아 있을 때조차도 마음이 눌리는 느낌. 그런 순간엔 이상하게 ‘여행’이라는 단어만 머릿속을 맴돌죠.

그런데 여행을 떠나야 할 때는 단순히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마음만 생길 때가 아니더라고요. 저는 몇 번의 중요한 순간을 지나며 ‘아, 이럴 땐 꼭 여행이 필요하구나’ 하고 느꼈던 때가 있었어요. 오늘은 그 순간들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해요.

여행이 필요한 순간

1. 번아웃이 찾아왔을 때 –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친 그 순간

회사에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야근까지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왜 이걸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걸 ‘번아웃의 시작’이라고 느껴요. 더 이상 일에 몰입도 안 되고,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게 두렵고, 아무리 자도 피곤이 가시지 않을 때… 그때 저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엔 이런 시기에 억지로라도 회식에 참석하거나, 더 열심히 일해서 이겨내려 했어요. 그런데 그럴수록 더 번아웃이 깊어졌죠. 결국 작은 연차 하나 내고 3박 4일 제주도로 혼자 다녀왔어요. 특별한 일정 없이 바닷가에 앉아서 책도 읽고, 그냥 걷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런데 그 시간이 제겐 ‘리셋 버튼’이었어요.

번아웃은 휴식이 필요한 게 아니라 ‘거리두기’가 필요한 순간이에요. 나를 소진시킨 환경에서 물리적으로 벗어나는 게 첫 번째입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지쳤는지도, 그곳을 떠나봐야 보이니까요.

2. 이직 혹은 퇴사 직후 – 인생의 전환점을 준비하는 시간

이직을 앞두거나, 퇴사하고 잠시 공백기를 가질 때도 꼭 여행이 필요한 시기예요. 대부분 이 시기를 “재정비 기간”이라 말하지만, 실은 마음이 제일 흔들릴 때죠. ‘잘한 걸까?’,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같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고, 의욕과 불안이 동시에 몰려와요.

저는 이직 전에 베트남으로 5일간 혼자 여행을 떠났어요. 주위에선 “지금 돈 아낄 때 아니냐” 했지만, 오히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새 직장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고, 오후엔 노트북을 켜서 하고 싶은 일들을 정리했어요. 그러면서 알게 됐어요. 나는 퇴사를 두려워한 게 아니라, 멈추는 걸 허락하지 않았던 나 자신이 문제였다는 걸요.

이직 직후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히려 그 공백을 여행으로 채우면, 새 출발이 훨씬 단단해져요.

3. 사랑이 끝났을 때 – 마음이 부서진 날엔 낯선 풍경이 약이 된다

이별을 겪은 직후, 여행을 떠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었어요. 사랑이 끝난 후, 집에 있는 게 너무 괴롭고 침대에 누워 있어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그 사람과 함께 갔던 장소, 함께 들었던 노래가 하나둘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고, “이러다 무너지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비행기 표를 끊었어요. 홍콩으로 3박 4일. 당시 시위가 격렬해서 친구들은 말렸지만, 저는 그냥 어디든 ‘그 사람의 기억이 없는 곳’이면 됐어요.

낯선 도시의 공기, 모르는 언어로 가득 찬 거리, 처음 보는 음식들… 신기하게도 그 풍경들이 저를 다시 숨 쉬게 만들었어요. 이별 직후엔 누구보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리고 여행은 그걸 가장 자연스럽게 가능하게 해 줘요. 새로운 공간에 나를 던졌을 때, 감정이 천천히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4. 그냥... 너무 익숙해져 버렸을 때

놀랍게도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여행을 떠납니다. 저는 이제 이게 ‘가장 성숙한 여행의 이유’라고 생각해요. 똑같은 일상, 같은 길, 반복되는 대화 속에서 무언가가 말라가는 느낌이 들 때… 여행이 필요해요.

저는 어느 날 출근길에 "지금 내가 몇 년째 똑같은 길을 가고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일 아닌 것 같지만, 그 순간 정말 무서웠어요. “나는 여기서 멈춰있는 걸까?”

그래서 주말에 가까운 도시로 1박 2일 다녀왔어요. 관광지가 아닌, 그냥 그 도시의 도서관에 앉아 사람 구경하고, 카페에서 책을 읽고, 혼자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알았어요. 삶을 새롭게 보는 법은 장소를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요.

결론: 여행이 필요한 때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여행이 꼭 어디 멀리 가야 하는 건 아니에요. 어떤 사람에겐 집 근처 공원도, 도서관도, 하루 반차 내고 떠나는 근교도 여행일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지금의 나에게 공간과 공기가 바뀔 여유를 주는 것’, 그게 진짜 여행의 시작이니까요.

지금 뭔가 자꾸만 망설여진다면, 작은 여행부터 떠나보세요. 지하철역 하나만 달라도 생각이 달라지고, 하루 일정만 비워도 가슴이 덜 답답해집니다. 그리고 그 작은 움직임이, 내 마음을 구하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어요.

여행은 결국 장소가 아니라, 나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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