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자카르타는 발리처럼 유명한 해변도 없고, 자카르타처럼 고층 빌딩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도시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독특한 정치·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엔 ‘술탄’이 통치하는 특별자치주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왕정과 민주주의가 공존하는 족자카르타의 특별한 제도, 그 시작과 현재, 그리고 문화적 의미를 찬찬히 풀어보겠습니다.
자바섬의 마지막 왕정 – 술탄 체제의 배경과 역할
족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세습 군주인 술탄(Sultan)이 주지사(Gubernur) 역할을 겸임하는 지역입니다. 현재 술탄 하멩쿠부워노 10세(Hamengkubuwono X)가 실질적인 지역 행정 수반이자 상징적인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죠. 하지만 이 제도는 단순히 전통을 고수한 결과가 아닙니다. 역사적 맥락과 독립운동의 상징성이 복합적으로 얽혀 만들어진 것입니다. 1945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 족자카르타의 술탄은 가장 먼저 ‘공화국 정부를 지지하며 독립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습니다. 그 결과, 중앙 정부는 족자카르타에 ‘특별자치 지위’를 부여하고, 술탄을 직선 선거 없이 주지사로 임명하는 특별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술탄제는 단순한 왕정의 잔재가 아니라, 국가의 독립에 기여한 지역의 명예를 제도화한 사례로서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주민 대다수는 술탄제 유지에 찬성하고 있으며, ‘투표하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지도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행정과 문화가 만나는 곳 – 족자카르타의 자치권 구조
족자카르타의 특별자치권은 단순히 상징적인 정치체제를 넘어, 실질적인 행정 자율성으로 이어집니다. 술탄은 주지사로서 도의회와 예산, 인프라 결정 등 행정에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으며, 부주지사도 전통 귀족인 파쿠 알람(Paku Alam)이 임명되어 이원적인 왕족 행정 시스템이 운영됩니다. 이 제도는 중앙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지역 고유의 문화와 정책을 보호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예를 들어, 족자카르타에서는 전통 시장 보호, 도시 중심에 고층건물 제한, 예술·공예 지원 예산 확대 등이 술탄의 지시에 따라 이뤄지고 있습니다. 족자카르타에는 스타벅스나 맥도날드보다 바틱 공방과 전통 제과점이 더 많은 도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화의 흐름 속에서도 전통문화가 지켜지는 구조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도로명도 ‘숫자 기반’보다 ‘역사적 의미’ 중심으로 지어지며, 주요 건축물도 술탄궁 중심의 방사형 도시 구조를 지키고 있죠.
역사에서 오늘로 – 족자카르타 시민들의 자부심
족자카르타의 특별자치제도가 정말로 '성공한 제도'인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법이나 왕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자부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술탄은 공식적으로는 정치인과 행정가이지만, 실제로는 지역 예술 축제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바틱 교육을 장려하는 캠페인에 참여하며 시민과의 거리감을 좁혀갑니다. 시민들 또한 자신들이 “자카르타와는 다르게 살고 있다”고있다”라고 표현합니다. 물가도 낮고, 거대 기업보다 개인 상점이 주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동네 분위기’가 도시 전반에 흐르고 있습니다. 이곳에선 정치가 권위가 아니라 살아있는 일상 안의 리더십으로 기능합니다. 그래서 족자카르타 사람들은 자주 “우린 투표 없이도 믿을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민주주의와 전통 사이의 균형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긍심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보여줍니다.
족자카르타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도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오래된 것을 가장 새롭게 지키는 도시입니다. 술탄 체제라는 독특한 제도는 왕정의 흉내가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존중과 선택으로 이뤄진 공동체적 합의입니다. 족자카르타를 걷다 보면, 그 길 위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철학이 묻어납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생각보다 오래, 그리고 깊이 마음에 남습니다.